미국 사는 사회복지사, 그렇지만 사회복지사의 종류가 얼마나 다양한가
그렇다면 나는 구체적으로 무슨 일을 하는 지 소개할 필요가 있다
가장 쉽게 설명하는 방법으로 현재 인스타그램에서 내가 그리고 있는 인스타툰을 가져와 보았다.
(@bdbtoon - 별달밤툰 : 미국 사회복지, 미국 일상, 고양이 일상 등을 그리는 나의 소소한 취미.)
나는 미국 대학교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이다.
미국 중부에 있는 작은 4년제 공립 대학교 교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처음에는 사회복지사가 대학교에?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하였지만, 지금은 대학교에 꼭 있어야 할 인력이라 생각한다.
대학교 내에 존재하는 많은 오피스들 가운데 나는 성폭력 피해자 지원 프로그램에서 근무하는 advocate/ case manager 이다.
나의 주요 대상층은 해당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다.
교직원이나 지역사회 주민들은 다른 곳으로 연계해야 한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공식적으로 제공하는 서비스이기 때문에 어떠한 비용도 없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1학년 신입생부터 대학원생까지 다양하기 때문에 미국나이로 17살부터 많게는 서른 즈음의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내게 찾아오는 학생들은 모두 피해생존자(survivor)이다.
(* 피해자 - victim 이라고 부르지 않고 생존자 - survivor 라고 명칭한다)
우리 오피스에서 주로 하는 일은 성폭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이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폭력 피해를 겪은 이들을 모두 돕고 있다.
성폭력, 가정폭력, 데이트폭력, 스토킹, 성희롱, 아동기 학대 피해까지 다양한 일을 겪은 이들이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있는 인스타툰에서는 최대한 모든 생존자를 동물로 표현하려고 한다. 혹시라도 내가 어떤 인물의 특징을 그릴까봐서다.)
내가 생존자들과 함께 하는 일은 다양하다.
가장 주가 되는 업무는 1대 1 상담을 제공하는 일이다. Safety planning 부터 트라우마 상담까지 다양한 내용을 다룬다. 같은 학교 내에 일반적인 학생 상담센터가 따로 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counseling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지만, 결국은 상담을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같다.
그 외에는 advocate으로서의 역할들이 있다. 생존자들이 병원, 경찰서, 법원 등을 가야할 때에 함께 동행한다. 정서적 지지를 해주는 것 뿐만 아니라 절차 상에서도 도움이 필요하다면 제공하는 편이다.
교내 자원이기 때문에 편리한 점은 사례관리, 자원연결이 매우 용이하다는 것이다. 다른 오피스들과의 관계를 쌓아둘 수 있고 체계가 복잡하지 않아서 주거, 학습, 고용 등에서 여러가지로 자원을 연계할 수 있다.
그 밖에도 생존자들 지지 모임 (Support group)도 주 1회 진행하고 있다.
동행 서비스를 지원하다보면 미국살이 5년차에도 쉽게 가보지 못할 곳들을 자주 방문하게 된다.
경찰서, 병원 응급실, 법원 등이 그러하다.
처음에 생존자들과 법원에 갔을 때가 생생하다. 그때는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터라, 다른 동료의 케이스를 함께 따라가서 배우고자 했다. 처음 들어가서 보게 되었던 광경이 마치 미국 드라마 속 한 장면 인 것 같아서 매우 생경하게 느껴졌다.
처음엔 모든 게 낯설었지만 일 한지 2년 반이 지난 지금은 많은 일들을 익숙하게 해내고 있다.
처음 일을 시작한 건 2020년 1월. 일을 막 배우기 시작할 무렵 미국에도 코로나의 심각성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일을 재택으로 하기 시작했고, 학교 수업이 중단 혹은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 되면서 클라이언트 수가 감소했다.
상대적으로 널널하게 시작했던 1년을 보낸 후 현재 정상화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울만큼 바쁜 스케쥴에 정신을 차리기 어려웠지만 현재는 익숙하게 하루 하루를 무사히 넘기고 있다.
내 하루는 사례 기록, 서류 작성, 상담, 그리고 아주 많은 상담으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한 가지 일을 오래 해도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한 순간의 폭력이 한 사람에게 얼마나 크고 치명적인 영향을 오래도록 남길 수 있는 가이다.
나에게 찾아오는 학생들 중 어떤 경우는 몇 년간 지속된 폭력에 시달려온 이들도 있다. 하지만 몇몇은 어느 여름 날, 겨울 날, 가을 날, 한 사람이 내린 잘못된 판단과 결정에 의해, 그 이후 몇 년 동안 어려움을 겪는다.
나 역시 그런 날의 상담을 마치고 돌아와서는 오늘 하루도 아무 걱정없이 무탈하게 보냈을 가해자를 생각하며 마음이 복잡하다.
하지만 동시에, 내가 항상 생존자들에게 배우는 것은 '사람의 회복력이 대단하다'는 것이다.
매마른 사막에서 티우는 새싹처럼
누군가 내버리고 간 상처 속에서 눈부시게 피어난다.
매일 매일 듣게 되는 마음 아픈 이야기들에 마음이 지치기도 한다.
하지만 매일 매일 목격하게 되는 생존자들의 눈부신 회복력에 다시금 힘이 난다.
이렇게 여린 이들이 힘을 내고 노력하고 용기를 내 나에게 찾아왔다면, 하루 하루를 웃으며 살아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면,
나 역시 고개를 들고 그들을 향해 미소 짓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도 나의 오피스 문은 활짝 열어둘 예정이다.
+ 적어도 일주일에 1-2번씩은 인스타그램에 새로운 에피소드를 업로드 하려고 노력 중 입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찾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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