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잘 지내고 계신가요?
시카고는 가을 날씨가 완벽하답니다. 조금 쌀쌀하긴 하지만, 알록달록한 단풍 보는 재미가 있어요.
이번 주말에는 가을 날씨 즐기러 산책도 다니고 Pumpkin patch 이벤트도 다녀왔답니다.

벌써 박사 생활의 첫 쿼터, 첫 주 수업을 시작한 지 한 달이 지났답니다.
언제 이렇게 시간이 지났나 싶다가도, 이렇게 박사생활 한 지가 엄청 오래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질 때도 있어요.
이제 겨우 한 달을 마친 지난 주 목요일, 수업을 끝내고 교수님을 찾아가서 펑펑 울고 말았답니다.
사건은 수업에서 시작되었어요.
이 수업은 'gender violence'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업으로, 그 주의 주제가 유난히도 어려웠답니다.
학문적으로 어려웠다기 보다는, 다루는 주제가 워낙 무겁고 또 감정적인 내용이라 전반적인 수업의 분위기가 어려웠어요.
그 주에는 state violence, 즉 정부 혹은 나라 차원에서 개인, 특히 여성들에게 가하는 폭력에 대해 다뤘어요.
주제가 주제이다보니, 역사 속에서 다양한 전쟁, 그리고 그 안에서 폭력 피해를 입은 여성들에게 대해 이야기를 했답니다.
무겁게 흘러가던 수업 도중에, 어떤 한 학생이 자기 생각을 공유하다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어요.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아마 다들 떠올렸겠지만 굳이 입에 담지 않았던 이야기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아마 그 이야기를 꺼낸 학생은 모를 수 있겠지만, 그 수업에 다른 한 학생이 실제로 그 지역 출신이어서 저를 포함해 많은 학생들이 다들 멈칫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가 이런저런 생각을 공유하다가, 마지막에 가볍게 던진 한 문장이 저에게는 정말 크게 들렸어요.
그 친구가 '뭐, 나도 잘 모르겠어. 결국엔 뭐 우리 일은 아니니까' 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나서 강의실에 아주 긴 정적이 흘렀어요.
그 순간, 저도 제가 느낀 감정을 형용할 수는 없었지만, 제가 감정적이였고, 또 한 마디라도 하고 싶었다는 걸 기억합니다.
원래도 유창하지 않은 영어인데, 감정이 앞서다보니 더더욱 조리 있게 말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만, 대략 '정치적 혹은 종교적인 주제를 떠나 그 속에서 피해 받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이 있으니 우리가 계속 관심을 가져야 한다' 라는 취지로 이야기했습니다.
그렇게 애매모호한 분위기로 수업이 끝나고 나서, 사실은 지도교수님에게 다른 행정적인 이야기를 하러 잠시 찾아갔었어요.
원래 하려던 이야기를 잘 마치고 나서 방금 끝난 수업 얘기로 이어졌는데, 저도 모르게 눈물이 펑펑 나더라구요.
교수님께서 경청해주신 덕분인지, 울면서 횡설수설하면서도 점점 더 제가 느꼈던 그 감정이 무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그 수업에 함께 있었던 그 지역 출신 학생에 대한 걱정이 앞섰어요. 괜히 이 이야기가 나오는 게 불편하지는 않을까 걱정을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만약 한국에 무슨 일이 생기면, 결국 그때 내가 느낄 감정은 이 수업의 다른 친구들에게는 단순한 이방인의 무언가겠구나' 하는 고립감. 그리고 일종의 배신감이 들었던 것 같아요.
나는 이 나라 미국에 와서 이들의 역사에 대해서 배우고, 그 역사 속에서 벌어진 차별과 억압에 대해 공부하고 공감하려 노력하는데..
결국 나의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이 사람들에게 뉴스 속 한 장면이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던 것 같습니다.
2018년에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운 좋게 정말 좋은 이들을 만나 크게 이방인이라는 생각에 괴로워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에는 저는 그 곳에서 지독한 이방인이 된 것만 같았답니다.
안타까웠어요.
지난 몇 년간, 코로나로 인해 미국 내 아시안에 대한 혐오 범죄가 기승을 부릴 때, 그 때 나의 곁에 있었던 사람들이 보여주었던 마음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저는 미국 시골에 살고 있던 때라, 캠퍼스 타운 특유의 진보적인 분위기와 코로나로 인해 텅 비어버린 동네 덕분에 제 안전에는 크게 부담을 느끼지 않고 있었어요. 다만 옆 도시에 장보러 가야할 때 좀 더 조심해야 했는데, 사실 저는 도시에서 살면서 직접적인 위협과 공포에 시달리는 이들에 비해 내 상황은 별로 문제도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 제 동료와 친구들은 제게 와서 손 내밀어주고, 제 대신 울어주었습니다.
몇 몇 친구들은 오히려 본인들이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아시안 혐오 범죄 예방을 위한 단체에 기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어요.
이 이야기 속 어느 누구도 아시안이 아니었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일처럼 생각할 이유가 없었지만, 제게 나서서 지지와 연대를 보여주었고 그건 제게 정말 큰 위안이 되었어요.
오늘의 수업에서는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습니다.
침묵은 이어졌고, 결국 제가 이야기를 해야했지요.
저 조차도 조심스러운 마음에 직접적으로 이야기 하지 못하고 빙빙 돌려 이야기한 것, 그게 다였답니다.
저 역시도 그 순간 그 공간에 있던 그 학생에게는 제가 필요할 때 받았던 만큼의 지지와 연대를 해주지 못한 것 같아 안타깝고 미안했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제 이야기를 쭉 들으시고는 분명 본인도 예상하지 못하였던 발언이었고, 그 때 본인도 당황해서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이야기 해주셨어요. 교수님께서는 최대한 그 주제를 수업에서 다루지 않으려고 하셔서 대화를 더 길게 이어가기 보다는 다른 쪽으로 돌리는 방식으로 개입을 해주셨어요.
또 실제로 수업 말미에 어느정도 정리도 해주셨기에 교수님을 원망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지만, 그래도 공감해주시니 큰 힘이 되었답니다.
교수님 연구실을 나설 때에는 오히려 홀가분하고 따뜻한 마음이 들어서 좋았어요.
이 일로 인해서 어떤 수업이 좋은 수업인지, 어떤 강의실이 모든 학생들에게 안전한 공간이 될 수 있는지 고민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프로그램을 무사히 마치고 졸업하게 되면, 아마 높은 확률로 저 역시도 수업을 가르치는 위치에 놓일 수 있겠지요.
그 전에 조교로 일하며 수업을 이끌어볼 기회가 생긴다면, 생각보다 빨리 그런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습니다.
제가 공부하는 것이 사회복지이다보니, 이런 이슈들에서 절대 거리를 둘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럴 때, 누군가의 이야기를 단순히 지적 대화의 소재로 소진하지는 않을 수 있는가.
또 나와 그 이슈 간의 거리감을 유지하되, 타인의 일로 치부해버리지 않을 수 있는가.
이 공간 안에서 누군가를 타자화 하지 않는가.
이런 고민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하는 박사 첫 학기 4주차 였답니다.
생각이 많아져 이번 글은 다른 글들에 비해 다소 무거워졌네요.
계속해서 박사생활 잘 해나가다가 중간 중간에 글로 찾아오겠습니다 :)
댓글로 응원 남겨주시고 질문 남겨주시는 게 제게 큰 힘이에요!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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